
2025년 1월, 미국은 2기 정부 시작 직후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총 규모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이 거대 프로젝트의 핵심은 AI는 물론, 향후 강인공지능(AGI) 주도권에 있다.
미국이 이 프로젝트에 보이는 전략 기저에는 국가 안보가 있다. 미국이 재정의하려는 안보적 가치에는 미국의 동맹국들의 참여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는 전임 정부의 칩스법(CHIPs & Science ACT, 2022)에 내포된 기술안보 철학을 계승하되, 이를 AI 방향으로 전략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도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일본 기업들도 참여한다. 일본은 꾸준하게 반도체 산업 부흥 정책을 펼쳐왔고, 특히 최근 추진하는 2 나노팹은 선단 공정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하는데, 그 주된 수요는AI 반도체다. 거시적으로는 일본이 미국의 [반도체+AI] 전략의 파트너 국가가 되려는 목표를 추구함을 보여준다.
I 미국 :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리쇼어링 전략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미국의 AI 기술과 연간 수천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는 거대한 자본력, 제조업 등 각각의 도메인 산업 지배력으로 앞서 나간다고 해도, 몇 가지 병목지점은 있다.
더 강력한 AI 구축을 위해 컴퓨팅 자원이 더 많이 필요하므로 더 집중된 AI 반도체와 더 효율적인 AI 모델이 우선 중요하다. 일례로 2025년 1월 전 세계에 쇼크를 준 중국 AI 스타트업의 거대언어모델(LLM)은 AI 산업에 있어 경쟁의 한 축이 가격 대비 성능비가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앞으로 엔비디아가 독점해 오던 AI 연산 특화 GPU 경쟁 구도도 NPU, TPU는 물론, 기존의 CPU나 또 다른 병렬 컴퓨팅 혁신으로 다변화될 것임을 암시한다.
한국의 메모리 메이커가 지배하던 GPU 특화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더 효율적인 AI 컴퓨팅 환경을 위해 기존의 DRAM 같은 범용 메모리는 물론 AI 특화 HBM 등으로 다변화될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AI 패권 전략은 반드시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필요로 한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공급망 상당수를 아예 미국으로 가져오는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을 빠르게 추진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대만은 파운드리 산업 생태계를 미국 애리조나주에 1,650억 달러를 투자하여 5 나노 이하급 반도체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이전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텍사스주에 600억 달러를 투자하여 10 나노 이하급 반도체 생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하반기에 한국의 반도체 업체가 수주한 미국 자율주행차량 전용 시스템반도체 물량 역시 대부분 텍사스 파운드리 팹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애나주에 건설되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팹은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메모리 제조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리쇼어링 전략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반도체 수요를 스스로 모두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반도체 제조 자급률을 2024년 기준 9%에서 2035년까지 20%로 향상시키는데 주력 엔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I 중국 : 독자적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빅펀드 & 동수서산 전략

미국이 내적으로 리쇼어링과 AI 주도권을 추구하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외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주력 정책이며, 이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있어 가장 큰 외부 변수가 된다.
중국은 이에 대항하여 반도체 공급망 자급도를 높이는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펀드를 이미 10년 넘게 추진하며 자국의 반도체 기업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중국은 이미 14차 5개년 계획에서 반도체와 AI를 국가 안보 및 제조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못박았고, 빅펀드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 혹은 공기관에서 관리하는 반도체 혹은 AI 펀드를 통해 수십조 위안 규모의 자본을 지속 투입해 왔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정책은 최근 AI 자급 정책과 연계되어 AI 반도체의 자립 정책으로 이어진다.
특히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인해 엔비디아 H100 같은 GPU를 거의 못 쓰게 되자, “기술자립 (自立自强)” 기조 아래 GPU, NPU, 메모리까지 풀-스택(full-stack) AI 하드웨어를 국산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AI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판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플레이어로 자리 잡고 있고, 이들 다수가 지방정부나 국가 펀드로부터 직접 지분 투자를 받는 구조다.

중국의 AI 칩 생태계 인프라 전략은 이른바 ‘동수서산(东数西算, East Data West Compute)’이다. 즉, 신장 지역 같은 중국 서부의 전력 생산 및 부지 여유를 활용하여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8개 이상 건설하고, 동부에는 데이터 클러스터를 10개 이상 구축하여, 전력 집약적 AI 데이터센터를 내륙으로 분산하는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셈이다.
2024–25년 중국 내 데이터센터용 AI 서버 출하량이 연평균 55–65%씩 성장하고 있으며, 2027년에는 글로벌 AI 서버 소비의 25–30%, 제조의 35% 이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국가가 GPU 및 데이터센터까지 직접 챙기는’ 중국식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라 볼 수 있다. 미국의 수출 통제는 단기적으로는 중국산 칩 생산량을 연 20만 개 수준으로 묶어 두는 효과를 내고 있지만, 동시에 대형 인터넷 기업의 인프라를 국산 칩으로 강제 전환시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식 GPU 주권”을 키우는 촉매 역할도 한다.
여기에 로봇이나 물리적 AI(Physical AI)를 강조하는 로봇 산업 5개년 계획과 “로봇+행동 계획”이 결합되면서, 중국은 AI를 디지털 서비스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방위, 즉, 제조, 물류, 도시 인프라 전체를 통제하는 운영체제로 확장하려 한다.
I 대만 : 미국부터 EU까지, 동맹 공급망을 묶는 핵심 코어로

대만은 이미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로 불릴 정도로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최정점에 서 있지만, 최근 전략은 단순 파운드리를 넘어 AI, 안보, 동맹을 묶는 플랫폼 국가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2024년 승인된 ‘5대 신뢰 산업’에서 반도체, AI, 군사, 보안, 차세대 통신을 묶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단순 수출 산업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동맹 공급망의 코어”라는 정체성을 세운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3개 팹, 2개 첨단 패키징 시설, R&D 센터를 포함해 1,650억 달러까지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이는 사실상 미국 스타게이트 생태계에서 필요한 AI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선단 파운드리 역할을 맡겠다는 신호다.
동시에 대만 파운드리 업계는 독일 드레스덴 등 유럽 투자에도 참여하면서, 미국은 물론 EU에서도 “동맹 내 생산”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배치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규모 해외 투자와 동시에 대만 정부가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서 관세 인하를 요구하면서도, 반도체 수출은 이미 관세 예외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설비와 투자는 동맹국으로 분산하되, 가치사슬의 두뇌는 대만에 남긴다”라는 전략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거대한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있어 필수인 에너지 안보(원전 생태계 유지 문제, LNG 발전 비중 한계, 그리드 문제, 재생에너지 믹스 최적화 등) 이슈는 대만이 처한 중대한 문제다. 특히 최근 들어 불거지는 중국과의 양안긴장 문제로 대표되는 안보 리스크, 또한 한국과 맞먹을 정도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로 대표되는 인력 문제 등 구조적 제약은 여전히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주도 전략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로 남아 있다.
I 일본 : 고부가 밸류 체인 재탈환을 위한 총력 프로젝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여러 변수가 생기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국가는 일본이다. 특히 일본의 반도체 산업 전략은 한마디로 “선단 노드 복귀 + AI 메모리 허브 +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핵심 인프라 파트너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반도체 부흥 전략에서 홋카이도의 2나노 로직반도체 팹은 일본이 다시 선단 공정 클럽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국가 주도 프로젝트다.
동시에 일본은 “AI 메모리 허브” 포지션의 복귀도 노린다. 특히 히로시마 공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미국과 협력하여 선단공정으로 DRAM 제조 규모를 확장하는 것은 메모리 증산을 넘어, AI 반도체 특화 HBM 생산 캐파 확장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국내에 AI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도 포함된다. 미국 내에 설치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AI 데이터센터뿐만 아니라, 스타게이트 노르웨이, 스타게이트 UAE 같은 해외 데이터센터, 그리고 유럽이 EU 차원에서 추진하는 EU AI 데이터센터에서 필요로 하는 HBM과 DRAM, 그리고 장기적 데이터 저장을 위한 eSSD 같은 여러 종류의 메모리에 대해 안정적인 메모리 공급을 하겠다는 포석이다.
특히 일본은 여전히 글로벌 산업 경쟁력이 있는 “AI+로봇+자동차” 공급망의 고부가가치 창출 체인을 재탈환하려 한다. 이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부흥 정책과 연결돼, 일본이 단순 하청이 아니라 미국 AI 인프라 전략의 금융 조달과 산업 영향력 양쪽에서 키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의미다.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 등에는 이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를 묶어 “콜드 리전 AI+반도체 허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고, 원전 재가동 및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해 전력 문제에 대처하면서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특히 전기자동차(EV) 기반 모빌리티 자율주행 전환과도 연동시키려 하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결국 일본은 “미국 스타게이트와 깊이 엮이되, 그 속에서 일본만의 선단 로직-HBM-로봇-자동차 밸류체인을 재구축한다”는 이중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I EU : 보조금과 규제를 결합한 칩스법

EU는 미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디지털 주권”과 규제 프레임을 엮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특이한 모델을 취한다. 2023년 발효된 유럽 칩스법(European Chips Act)은 2030년까지 유럽의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10%에서 20%로 끌어올리고, 설계–제조–패키징을 아우르는 반도체 산업 전 밸류체인을 유럽 내에 다시 세우겠다는 목표를 취한다.
그 일환으로 독일 드레스덴에 대만 파운드리 업체의 투자로 설립되는 합작 팹이 있다. 이를 위해 EU는 50억 유로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또한 자동차 반도체 팹에도 EU 9.2억 유로 등 보조금이 승인되었고, 그 외에도 EU 내 각 회원국이 개별 보조를 얹으면서 유럽판 IPCEI(중요공통이익 프로젝트)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독일 내 해외 파운드리 팹은 기술 개발 스케쥴 지연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EU는 더 공격적으로 보조금을 투입하는 ‘칩스법 2.0’을 개편한다는 논의를 시작했다. EU는 AI 측면에서는 AI Act라는 강한 규제 프레임과 동시에, 대규모 컴퓨트 투자로 ‘뒤늦은 추격’을 시도한다. EU는 2–3년 안에 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일명 “AI 기가팩토리”)를 10곳 내외로 구축하기 위해 200억 유로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각 데이터센터 사이트에 10만 개 이상 AI GPU를 수용하는 슈퍼 컴퓨팅 허브를 만들겠다는 이 계획은 GPU뿐만 아니라, DRAM, NPU, TPU 같은 여러 종류의 ASIC칩의 대량 수요를 의미한다. 동시에 2024년 발효된 EU의 AI Act는 2026–27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인데, 에너지 및 환경 규제 부담이 크다는 산업계의 반발로 ‘디지털 옴니버스’ 개편 논의와 완화 요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나 독일의 데이터 기업 총수 등은 “AI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뒤처지면 유럽의 미래가 위험하다”며, 최소한 AI 칩,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에 대한 자체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I 한국 : AI 산업 내재화로 공급망 점유율 확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2025년 6월 출범한 신 정부에서 이른바 ‘소버린 AI’로 대표되는 AI 산업 내재화 정책을 대표적인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AI 시대에서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주도적인 포지션을 지키려는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미 AI 연산, 특히, 추론과 학습 과정에 필요한 하드웨어에서 필수재가 된 HBM 같은 특수한 형태의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제한된 전력으로 작동되는 엣지AI 시스템을 위해 필요한 저전력DDR 메모리 (LPDDR), 대용량 AI 데이터센터를 위해 규모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GDDR 같은 DRAM, 장기적인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 저장을 위해 필수적인 eSSD 같은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엔비디아가 지배하는 GPU를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ASIC 칩의 개발을 위해 한국 정부와 팹리스 업체들이 포함된 민간 부문은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 기관과 공공 은행의 주도로 120-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경기도 남부권에 들어서게 될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전국에 5-6곳 조성될 AI 데이터센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될 반도체 소부장 및 패키징 연구개발 생태계 투자를 확장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와 메가 클러스터 팹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양의 전력을 감당하기 위한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I 마무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지난 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약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철저한 자유무역 기조 하에 형성된 효율적인 분업 구조를 조금씩 탈피하고 있다. 각국은 기술안보의 관점, 그리고 보호무역주의의 복귀가 가시화되면서 점점 경쟁적으로 첨단 컴퓨팅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과거 개발도상국에서나 많이 관찰되던 산업정책도 선진국에서 다시 확장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과 중국은 정부 주도로 자국 내 공급망을 지키고 이를 기술 패권 전력과 연계하고 있다.
AI의 지수함수적인 시장 규모 확장은 이러한 기술 패권 경쟁에 의해 촉발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더 증폭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클러스터, 중국이 주도하는 클러스터 등의 등장으로 국가 간 경쟁뿐만 아니라 클러스터 간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글로벌 공급망 개념은 희박해지고, 분산 공급망, 핵심이익공유 가능 국가 간 소규모 공급망, 반도체 생산-수요 기업의 특수목적법인 합자 등으로 대표되는 하이브리드화 공급망 같은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어 공급망은 전략적 관점에서 재정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 본 콘텐츠는 외부 기고자의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당사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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